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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90년대 한국 패션계의 상징, ‘이희재 다이어트’ 신드롬의 주인공이자 방송인·화가로도 활약했던 이희재 씨가 2025년 6월 9일, 담도암 투병 끝에 73세로 별세했습니다. 그의 인생과 업적, 그리고 마지막까지의 여정을 자세히 정리합니다.
목차
- 1. 별세 소식과 투병 과정
- 2. 데뷔와 1세대 패션모델의 길
- 3. ‘이희재 다이어트’와 대중적 인기
- 4. 방송, 강단, 화가로의 확장
- 5. 유산과 남긴 메시지
- 6. 관련 기사 모음
1. 별세 소식과 투병 과정
이희재 씨는 2022년 1월 담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은 뒤, 2023년 재발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2025년 6월 9일 오후 8시 6분,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울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6호실, 발인은 12일 오전 8시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평생 미혼으로, 가족과 지인들의 애도 속에 마지막 길을 떠나게 됐습니다.
“이희재 씨가 진단받은 담도암은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이 지나가는 통로에 생기는 암으로, 치료가 쉽지 않아 투병이 길어졌습니다.”
2. 데뷔와 1세대 패션모델의 길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여고, 건국대 의상학과를 졸업한 이희재 씨는 1971년 ‘목화아가씨’ 선발대회 1위를 계기로 패션모델로 데뷔했습니다. 1979년 미국 LA 국제모델콘테스트 3위, 루비나·김동수 등과 함께 한국 1세대 패션모델로서 패션쇼 무대와 광고, CF, 라디오, MC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며 모델이라는 직업을 대중에게 알렸습니다.
“20년 넘게 패션쇼 무대를 누비며, 한국 패션모델의 위상을 높인 선구자였습니다.”
3. ‘이희재 다이어트’와 대중적 인기
1993년 저서 ‘아름다운 여자 : 이희재 차밍스쿨’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이희재 다이어트’ 신드롬을 일으켰고, 많은 여성들에게 건강한 아름다움과 자기관리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습니다. 1983년 모델라인 아카데미 창립, 1990~2002년 차밍스쿨 ‘와이낫’ 원장 등 교육자로서도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이희재 다이어트는 90년대 한국 여성들의 자기관리 열풍을 이끌었습니다.”
4. 방송, 강단, 화가로의 확장
MBC 라디오 ‘지금은 가정시대’, ‘생방송 아침’, Q채널 ‘이희재의 차밍스쿨’ 등 방송인으로도 활약했고,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했습니다. 2010년 첫 개인전 ‘루이와 레이’로 화가로 데뷔, 2015년에는 중국 베이징에서도 전시회를 열며 예술가로서의 길도 걸었습니다. 2012년 ‘패션대전 30주년’ 무대에 특별 출연하는 등 패션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남았습니다.
“패션, 방송,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멀티 아티스트였습니다.”
5. 유산과 남긴 메시지
이희재 씨는 “다시 태어나도 모델이 되고 싶다”는 말을 남겼으며, 패션계와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력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담도암 투병 중에도 긍정적인 메시지와 자기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습니다.
“한국 패션모델 1세대의 상징, 그리고 건강한 아름다움의 아이콘으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