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배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돌고래 스파이커' 장윤창 교수가 2025년 5월 30일,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65세. 그의 별세 소식은 배구계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큰 슬픔과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장윤창 교수는 1978년 인창고 2학년 시절, 만 17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되며 배구계에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그해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의 4강 진출을 견인했고, 같은 해 방콕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후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금메달,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은메달 등 굵직한 국제대회에서 한국 배구의 중심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특히 왼손잡이 아포짓 스파이커였던 그는, 한국 남자배구 최초로 '스카이 서브'를 선보인 선수로도 유명합니다. 유연한 허리와 폭발적인 점프력, 그리고 후위 공격에서의 강력한 스파이크는 '돌고래'라는 별명을 낳았고, 그의 플레이는 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1983년에는 '조직력 배구'로 유명했던 고려증권 배구단의 창단 멤버로 합류해 실업 배구의 전성시대를 이끌었고, 1984년 슈퍼리그에서는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장윤창 교수는 슈퍼리그 개칭 직전까지 긴 현역 생활을 이어가며,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자기관리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은퇴 후에는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체육학 석사, 한국체육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학자로서의 길을 걸었습니다. 모교인 경기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고, 대한배구협회 기술이사, 한국배구연맹 경기위원, 대한민국스포츠국가대표선수회 초대 회장 등 배구 행정과 스포츠계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며 철저히 몸을 관리했던 그는, 지난해 말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자택에서 투병해 왔습니다. 하지만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장윤창 교수의 빈소는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6월 1일 오전 5시 30분입니다.
한국 배구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레전드, 장윤창. 그의 열정과 도전, 그리고 아름다운 스포츠맨십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